2011-09-05 15:53
[가사-6]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막강한쌤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는 김인겸이 쓴 기행가사입니다.
일동(日東)은 일본을 뜻하는 다른 표현이고, 장유(壯遊)는 장쾌한 유람을 말합니다.
합치면 일본으로 장쾌한 유람을 다녀온 노래라고 볼 수 있겠죠.
기행가사인 만큼 여정, 견문, 감상 등의 요소가 나옵니다.
일본 여행에서 얻은 일본의 풍속, 제도, 인정, 인습 등의 견문을 주로 다루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추보식 구성(시간에 흐름에 따른 구성)을 하고 있지요.

일동장유가는 가사 작품 중 가장 깁니다.
4책. 8,000구 인데 500페이지 짜리 책한권 분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문을 살펴볼 수는 없으니 일부분만 보도록 합시다.
(고어를 웹에서 쓰기가 어려워 한글에 써서 캡쳐해 붙였습니다.
붉은 줄이 있는 것은 오류가 아니에요^^;;)
 






 

 일생을 살아감에 성품이 어설퍼서 입신 출세에는 뜻이 없네.
진사 정도의 청렴하다는 명망으로 만족하는데 놓은 벼슬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과거 공부에 필요한 도구를 모두 없애 버리고 자연 찾아 놀러 다니는 옷차림으로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명산대천을 다 본 후에,
음풍농월하며 금강 유역에서 은거하고 지냈는데,
 서재에서 나와 세상 소식을 들으니 
 일본의 통치자 토쿠다과 이에시게가 죽고 우리 나라에 친선 사절단을 청한다네.  
이 때가 어느 때인고 하면 계미년(1763) 팔월 삼일이라.
경복궁에서 임금님께 하직하고 남대문으로 내달아서 
관우의 사당 앞을 얼른 지나 전생서에 다다르니,
사신 일행을 전송하려고 만조 백관이 다 모였네.
곳곳마다 장막이 둘러쳐 있고 집집마다 안장을 얹은 말이 대기하고 있도다.
전후 좌우로 모여들어 인산인해가 되었으니
정 있는 친구들은 손 잡고 장도를 걱정하고
철모르는 소년들은 한없이 부러워하네.
석양이 거의 되니 하나하나 이별하고
출발 신호에 따라 차례로 떠날 때에,
절과 부월 앞을 인도하는 군관이 국서를 인도하고
비단으로 만든 양산과 순시 영기가 사신을 중심으로 모여 섰다.
나 역시 뒤를 따라 역마에 올라 타니,
때때옷을 입은 지로 나장이 깃을 꼿고 앞에 서고
마두서자가 부축하고 쌍두마를 잡았구나.
청파 역졸이 큰 소리로 외치는 권마성은 무슨 일인가?
아무리 말려도 정해진 의식이라고 굳이 하네.
수염이 허옇게 센 늙은 선비가 갑자기 사신 노릇함이
우습고 괴이하니 남 보기에 부끄럽다.

 <중략>

 거센 바람에 돛을 달고 여섯 척의 배가 함께 떠날 때,
악기 연주하는 소리가 산과 바다를 진동하니
물 속의 고기들이 마땅히 놀람직하도다.
부산항을 얼른 떠나 오륙도 섬을 뒤로 하고
고국을 돌아보니 밤빛이 아득하여
아무것도 아니 보이고, 연해변에 있는 각 포구의
불빛이 두어 점이 구름 밖에서 보일 듯 말 듯하니
선실에 누워서 내 신세를 생각하니
가뜩이나 마음이 어지러운데 큰 바람이 일어나서,
태산 같은 성난 물결이 천지에 자욱하니,
만 석을 실을 만한 큰 배가 마치 나뭇잎이 나부끼듯
하늘에 올랐다가 땅 밑으로 떨어지니,   
열두 발이나 되는 쌍돛대는 나뭇가지처럼 굽어 있고
쉰두 폭으로 엮어 만든 돛은 반달처럼 배가 불렀네.
큰 우렛소리와 작은 벼락은 등 뒤에서 떨어지는 것 같고,
성난 고래와 용이 물 속에서 희롱하는 듯하네.
선실의 요강과 타구가 자빠지고 엎어지고
상하좌우에 있는 선실의 널빤지는 저마다 소리를 내는구나.
이윽고 해가 돋거늘 굉장한 구경을 하여 보세.
일어나 선실 문을 열고 문설주를 잡고 서서,
사면을 바라보니 아아! 굉장하구나.
인생 천지 간에 이런 구경이 또 어디 있을까?
넓고 넓은 우주 속에 다만 큰 물결뿐이로세.
등 뒤로 돌아보니 동래의 산이 눈썹만큼이나 작게 보이고
동남쪽을 돌아보니 바다가 끝이 없네.
위아래 푸른 빛이 하늘 밖에 닿아 있다.
슬프다, 우리의 가는 길이 어디란 말인고?
함께 떠난 다섯 척의 배는 간 곳을 모르겠도다.
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이따금 물결 속에
부채만한 돛이 들락날락하는구나.
배 안은 돌아보니 저마다 배멀미를 하여
똥물을 다 토하고 까무라쳐서 죽게 앓네.
다행하도다. 종사상은 태연히 앉았구나.
선실에 도로 돌아와 눈 감고 누웠더니
대마도 가깝다고 사공이 말하거늘
다시 일어나 나와 보니 십 리는 남았구나.
왜선 십여 척이 배를 끌려고 마중을 나왔네.

 <중략>

 굿을 보는 왜인들이 산에 앉아 굽어본다.
그 가운데 사나이들은 머리를 깎았으되
뒤통수 한복판은 조금 남겨 고추같이 작은 상투를 하였으며,
발 벗고 바지 벗고 칼을 하나씩 차고 있으며,
여자들은 머리를 깎지 않고
밀기름을 듬뿍 발라 뒤로 잡아매어,
족두리 모양처럼 둥글게 꾸려 있고,
끝은 둘로 틀어 비녀를 찔렀으며,
노인과 어린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막론하고 얼레빗을 꽂았구나.
의복을 보아하니 무 없는 두루마기,
옷단 없는 소매는 남녀 없이 한가지요,
넓고 큰 접은 띠를 둘러 띄고
날마다 사용하는 온갖 것을 가슴 속에 다 품었다.
남편 있는 계집들은 이를 검게 칠하고
뒤로 띠를 매었으며, 과부, 처녀들은
앞으로 띠를 매고 이는 칠하지 않았구나.

 <후략>

 점심 먹고 길 떠나서 이십 리를 겨우 가서
날이 저물고 큰비가 내리니 길이 끔찍하게 질어서
미끄러워 자주 쉬어야 하는지라.
가마 맨 다섯 놈이 서로 돌아가며 교대하되
갈 길이 전혀 없어서 둔덕에 가마를 놓고
한참 동안 머뭇거리면서 갈 뜻이 없는지라.
사방을 돌아보니 천지가 어둑어둑하고
일행들은 간 데 없고 등불은 꺼졌으니,
지척을 분간할 수 없고 넓고 넓은 들 가운데서
말이 통하지 않는 왜놈들만 의지하고 앉았으니,
오늘 밤의 이 상황은 몹시 외롭고 위태하다.
가마꾼이 달아나면서 낭패가 오죽할까.
그 놈들의 옷을 잡아 흔들어 뜻을 보이고
가마 속에 있던 음식을 갖가지로 내어 주니,
저희들끼리 지껄이며 먹은 후에 그제서야 가마를 메고
조금씩 나아가는데 곳곳에 가서 이러하니
만일 음식이 없었더라면 필연코 도주했을 것이다.
삼경쯤이나 되어서야 겨우 대원성에 들어가니
머리가 아프고 구토하여 밤새도록 몹시 앓았다.
<하략>


<일동장유가>는 우리말로 지어진 긴 기행가사입니다.
기행 가사는 성격상 기행문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기행문을 가사 양식으로 작성한 것이죠.
따라서 보통의 기행문처럼 여정/견문/감상이 모두 나타납니다.
섬세한 묘사가 뛰어난 작품으로 홍순학의 <연행가>와 함께 기행가사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작품에 나타난 상황들을 사자성어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다음의 표현을 보고 사자성어를 떠올려 보세요.

* 등 뒤를 돌아보니 동래의 산이 눈썹만큼이나 작게 보이고
  - 창해일속(滄海一粟), 창해일율(滄海一栗)

* 동남 쪽을 돌아보니 바다가 끝이 없네
 - 망망대해(茫茫大海), 무변대해(無邊大海), 일망무제(一望無際)


정답은 드래그해보면 나옵니다. ^^
본문 구절마다 어울리는 사자성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번씩 생각해 보면서 읽어봅시다.


참고) <일동장유가>의 구성

 제 1권 : 일본에서 친선 사절을 청하여, 여러 수속 끝에 1763년 8월 3일 서울을 떠나 용인, 충주, 문경, 예천, 안동, 경주, 울산, 동래를 거쳐 부산에 이름

 제 2권 : 10월 6일 부산에서 승선하여 발선(發船)하는 장면에서부터 대마도, 일기도(壹岐島), 축전주(築前州), 남도(藍島)를 거쳐 적간관(赤間關[下關])에 도착하여 머묾

 제 3권 : 이듬해 정월 초하루 적간관의 명절 이야기로부터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와다와라(小田原), 시나카와(品川) 거쳐 에도(江戶)에 들어가 사행(使行)의 임무를 마침

 제 4권 : 3월 11일 귀로에 올라, 6월 22일 부산에 귀환. 7월 8일 서울에 와서 영조께 복명(復命)함


[잡가-1] 잡가 개론
[가사-5] 속미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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